왜 MZ세대는 연금을 믿지 않는가
2030세대는 더 이상 연금을 노후의 안전망으로 여기지 않는다. 많은 청년들이 국민연금은 낼 땐 많고 받을 땐 적은 구조라며 회의감을 갖는다. ‘내가 은퇴할 땐 연금이 남아 있을까’라는 질문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이 세대의 경제적 불안을 상징한다.
이런 불신은 단순히 개인적 감정이나 세대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 사회적 경험, 그리고 글로벌 경제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연금 시스템이 가진 한계와 불투명한 미래가 젊은 세대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다.
그렇다면 한국만의 문제일까. 실제로 미국과 일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각국의 2030세대는 자국의 공적연금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자산 관리와 개인 투자에 눈을 돌리는 중이다.
이번 글에서는 MZ세대가 연금을 불신하게 된 구조적 배경을 짚고, 미국과 일본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비교하며 시사점을 도출해 본다.
납부는 늘고 수급은 불확실한 국민연금의 구조적 불신
2030세대가 연금을 불신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구조적 역전 현상에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미래의 연금 수급자 수는 급증하지만, 이를 부담할 젊은 세대는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만 해도 1명의 수급자를 위해 5명 이상이 연금보험료를 냈지만, 현재는 그 비율이 2대1 수준으로 줄었고 2040년 이후에는 1대1도 무너질 것으로 예상된다.
2030세대는 이 구조를 체감하고 있다. 지금 납부하는 연금이 미래의 자신에게 돌아오기보다는 현재의 기성세대를 위한 재정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더군다나 기금 고갈 시점이 2055년으로 예측되고 있다는 점에서 불신은 더욱 커진다. 결국 지금의 20대와 30대는 국민연금을 노후 소득의 기본축이 아닌 부가적 수단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또한 납부액 대비 수령액 비율이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진다는 점도 문제다. 과거에는 높은 수익률이 적용되었지만, 현재는 물가 상승률 수준으로 수익률이 낮아졌고 소득대체율도 점점 하향 조정되고 있다. 청년층은 사실상 강제저축의 성격을 지닌 연금 제도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불신은 보험료 체납률에서도 드러난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대와 30대의 체납률은 타 연령대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 부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 밀레니얼세대의 연금 회의와 개인 자산 관리로의 전환
미국에서도 젊은 세대의 연금 불신은 심화되고 있다. 미국의 공적연금인 사회보장연금은 2035년 이후 기금 고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젊은층 사이에서 연금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이러한 뉴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사회보장연금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설문 결과가 다수 발표됐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개인 은퇴계좌인 IRA나 401(k)와 같은 사적 연금 수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MZ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답게 앱 기반의 자산 관리 서비스, 로보어드바이저, 분산 투자 플랫폼을 활용해 자산을 직접 관리하고 미래를 대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조기 은퇴를 꿈꾸는 FIRE운동이 MZ세대 중심으로 확산되며 연금 외 수익 구조 마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들은 종잣돈을 마련해 배당주 투자, 임대 수익, 디지털 자산 등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노후 준비 전략을 짜고 있다.
미국 정부 또한 이러한 흐름을 인지하고 세제 혜택을 강화하고 있지만, 공적 연금에 대한 근본적 불신을 뒤집지는 못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청년세대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연금을 하나의 ‘옵션’으로만 인식하고 있으며, 그 밖의 자산 운영 방식에 훨씬 더 집중하고 있다.
일본 젊은 세대의 ‘연금 피로감’과 정부의 인식 전환 노력
일본 역시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심각한 가운데, 젊은 세대의 연금 피로감은 매우 깊다. 일본의 국민연금은 가입률이 낮고 납부 이탈자 비율도 높다. 실제로 20~30대의 국민연금 납부 거부 또는 체납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바 있다.
젊은 층이 연금을 불신하게 된 데에는 단순한 재정 문제 외에도 정치적 요인이 있다. 일본 정부는 수차례 연금제도 개편을 추진했지만, 실질적인 대책 없이 보험료만 인상하거나 수령 나이를 늦추는 방식으로 일관해 왔다. 이에 따라 MZ세대는 연금제도를 정치적 도구로 인식하며 신뢰를 더욱 잃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일본 정부는 ‘자기 책임 노후’라는 메시지를 강화하며 사적연금 확대를 유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개인형 확정기여연금, NISA와 같은 절세형 금융상품을 통해 개인이 직접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특히 NISA는 투자 수익에 대한 세금이 면제되어 MZ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으로는 여전히 공적 연금이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일본 청년층도 이중 구조 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공적 연금은 불신하지만, 그렇다고 사적 준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이중 불안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 2030세대의 심리와도 상당히 유사하다.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 대부분은 공적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특히 MZ세대는 미래에 대한 불안, 현재의 부담, 제도에 대한 신뢰 부족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으며, 이를 방치하면 연금제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단순히 연금 수령액을 늘리는 것이 해답이 아니라, 세대 간 공정성, 수익률, 납입 기간의 유연성, 사적 연금과의 연계 등 구조 전반에 대한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처럼, 공적연금이 줄어든 자리를 개인이 어떻게 채울 수 있도록 도와줄지에 대한 설계가 필요하다.
2030세대의 연금 불신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현실을 읽는 반응이다. 그들의 신뢰를 되찾지 못한다면, 연금은 이름만 남고 기능은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