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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음식의 경제적 가치: 폐기 농산물과 소비자의 인식 간극

by 우니84v 2025. 4. 16.

하루에도 수많은 음식이 유통되고 팔리며 식탁에 오르지만, 그중 상당수는 시장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버려진다. 특히 생산된 농산물 중 일정 기준에 미달한 제품, 즉 ‘규격 외’ 농산물은 소비자 앞에조차 나타나지 못하고 폐기된다. 색이 조금 어둡거나 크기가 불균형하다는 이유로, 혹은 겉 표면에 작은 흠집이 있다는 이유로 아직도 식용 가능한 양질의 농산물이 전량 버려지는 일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버려지는 음식이 단순히 윤리적 혹은 환경적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명백한 경제적 자원의 낭비이며, 농민의 생산 비용과 노동력, 유통망의 비용, 심지어 소비자의 지불 가치와 직결된다. 폐기된 음식에 들어간 모든 노동과 자원은 비용으로 쌓이지만, 아무런 수익도 창출하지 못한다.

이 글에서는 그간 간과되어 온 폐기 농산물의 경제적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소비자의 인식이 이 현상을 어떻게 심화시키는지 살펴보며, 대안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버려지는 음식의 경제적 가치: 폐기 농산물과 소비자의 인식 간극
버려지는 음식의 경제적 가치: 폐기 농산물과 소비자의 인식 간극

1. 규격 외 농산물은 왜 버려지는가: 유통 기준의 딜레마

한국 농업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일부는 소비자의 식탁에 도달하기도 전에 선별된다. 이 선별은 품질 보장을 위한 필수 단계이기도 하지만, 과도한 기준이 오히려 낭비를 유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마트에 진열되는 사과를 보자. 표면이 매끄럽고 색상이 고르며 크기가 균일한 사과만이 ‘정상품’으로 판단되어 판매대에 오른다. 하지만 같은 밭에서 자란 조금 작거나 기형적인 사과는 맛이나 영양 성분 면에서 큰 차이가 없음에도 ‘비상품’으로 간주되어 도매가보다도 낮은 가격에 판매되거나 아예 폐기된다.

이러한 규격 기준은 유통 과정의 효율성, 소비자의 심리적 만족감 등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겨지지만, 그 결과 생산된 농산물의 15~30%가 소비자와 만나지 못한 채 사라진다. 이는 식량 자원 낭비일 뿐 아니라, 농민의 수익 저하와 소비자 물가 불안정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더욱이 농산물 생산에는 종자, 비료, 물, 노동력, 연료 등 수많은 자원이 투입된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상품으로 인정받지 못한 순간 손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규격’은 생산자에게는 기준이 아니라 손실의 시작인 셈이다.

2. 소비자의 눈높이와 심리: ‘예쁜’ 음식이 좋은 음식일까

소비자의 선택 기준은 여전히 ‘보기 좋은 음식’에 머무르고 있다. 포장과 진열 상태, 색감과 윤기가 소비자의 구매 욕구에 큰 영향을 준다. 심지어 시장이나 마트에서 소비자들은 맛이나 신선도보다는 ‘외형’에 기반해 선택하는 경향이 짙다.

문제는 이러한 선택 기준이 유통업체와 생산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판매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규격 외 농산물은 애초에 시장에 올라오지도 못한다. 이로 인해 정상적인 품질의 음식이 애초에 ‘시장성’을 잃고 폐기되며, 이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실제로 한 식품 유통 기업의 사례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모양이 불균형한 당근’과 ‘약간 울퉁불퉁한 감자’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당 상품은 유통망에서 자동 탈락되어 왔으며, 연간 수천 톤이 폐기되고 있다. 이처럼 소비자의 인식이 생산 단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정작 우리 모두가 경제적 손해를 입고 있는 셈이다.

결국 ‘예쁜 음식 = 좋은 음식’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식량 낭비를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3. 폐기 농산물의 경제적 가치와 대안적 소비 모델

그렇다면 버려지는 농산물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나 될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매년 폐기되는 농산물과 식재료의 경제적 가치는 약 20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단순한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을 넘어, 생산·유통·소비 전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이 반영된 숫자다.

이러한 낭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못난이 농산물’ 전용 쇼핑몰이나 로컬푸드 직거래 장터는 그 대표적인 예다. 이곳에서는 기존 유통망에서 배제된 규격 외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소비자는 품질 좋은 음식을 더 합리적으로 소비할 수 있다.

또한 음식물 업사이클링 브랜드, 잉여 식품 구독 서비스 등은 폐기 직전의 식재료를 활용해 가공식품이나 반조리식으로 재탄생시키는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대안적 소비 방식은 단지 친환경을 넘어, ‘경제적 회복 모델’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정책적으로도 정부와 지자체가 못난이 농산물의 공공급식 도입을 장려하거나, 유통업체에 일정 비율의 비규격 농산물 매입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검토할 수 있다. 경제적 손실을 줄이는 한편, 사회적 가치도 창출하는 이중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먹지 않은 것’을 처리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 속에는 시간, 노동, 자연 자원, 비용이라는 다양한 경제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소비자의 무관심과 편견이 그 가치를 더욱 낮추고, 결국 사회 전체의 손실로 이어진다.

우리가 규격 외 농산물을 선택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소비 행위가 아니라 경제를 합리적으로 순환시키는 작은 결단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음식의 겉모습보다 그 속에 숨겨진 가치를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