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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희망으로 버티는 청년경제 – 대출, 코인, 그리고 심리의 문제

by 우니84v 2025. 4. 18.

요즘 청년들은 왜 이렇게 위험한 선택을 할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고위험 투자, 비이성적 소비, 대출로 시작하는 사회생활.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단순한 무모함이나 무지함이 아닌, '가짜 희망'에 의지해 버텨야만 하는 청년 세대의 현실이 있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단지 현실에서 가능한 선택지가 적을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희망에 매달리게 된다. 이 글에서는 청년들이 왜 불안한 구조 속에서 대출과 코인 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지, 그 배경과 심리를 함께 살펴본다.

가짜 희망으로 버티는 청년경제 – 대출, 코인, 그리고 심리의 문제
가짜 희망으로 버티는 청년경제 – 대출, 코인, 그리고 심리의 문제

1. 청년의 시작은 왜 ‘빚’으로 시작되는가

요즘 청년들이 대출에 쉽게 손을 대는 이유는 간단하다.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학자금 대출은 대학을 다니기 위해 필요하고, 취업 후 상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전세자금 대출은 독립의 필수 조건이 되었고, 월세로는 자립이 어렵다는 계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대출이 '시작의 자본'이 아니라 '생존의 연장선'이 되는 순간이다.
자산 형성의 첫걸음이 되어야 할 초기 대출이, 오히려 장기적인 금융 불안을 만드는 구조다.
게다가 대출의 문턱은 갈수록 낮아졌지만, 그 이후의 상환 능력은 여전히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기준금리는 오르고, 생활비는 늘어나고, 소득은 정체되면서 청년들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졌다.
그 결과 청년들의 금융 포트폴리오는 '자산'이 아니라 '부채'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이 부채는 경제적 자립의 기반이 아니라, 미래를 저당잡힌 상태로 만든다.

2. 청년들이 코인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그리고 수많은 알트코인들.
청년들이 암호화폐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단순한 투기심이 아니다.
그들은 기성세대의 자산 시스템에 진입할 수 없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부동산은 너무 비싸고, 주식은 느리고, 은행 이자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단기간에 계층 상승이 가능한 구조를 찾는다.
코인은 마치 그것이 가능한 듯 보이는 유일한 통로다.
즉, 암호화폐는 단순한 재테크 수단이 아니라 지연된 희망을 앞당기기 위한 도구로 작동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이 희망은 실현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회가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불확실한 기회에 더 매달리게 된다.
이건 비합리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합리적인 절망에 가까운 행위다.
문제는 이런 희망이 반복적으로 좌절될 때 생기는 심리적 상흔이다.
패배감, 무기력, 자기 비하. 그리고 다시 더 큰 위험에 베팅하게 되는 순환.
이 악순환은 청년 개인을 넘어, 사회 전반의 생산성과 신뢰 구조를 흔든다.

3. ‘희망’이 아니라 ‘기대’로 버티는 사회

지금 청년들이 가진 것은 희망이 아니다.
희망은 실현 가능한 미래에 대한 믿음이다.
하지만 많은 청년들은 이제 더 이상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기대에 가깝다.
기대란 운에 맡기는 것이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기회가 오겠지. 언젠가는 코인이 오르겠지. 언젠가는 로또 같은 인생 반전이 있겠지.
이러한 기대는 위태롭고 지속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세계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리 구조는 결국 무기력과 탈진으로 이어진다.
청년 개개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구조 앞에서 좌절하고, 사회는 이들의 가능성을 점점 잃어간다.
이제 필요한 것은 희망을 줄 수 있는 구조다.
자산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 안정적인 일자리,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금융안전망.
청년이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있을 때, 비로소 무모한 기대 대신 현실적인 희망을 품을 수 있다.

가짜 희망은 청년들을 살게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갉아먹는다.
이제는 이 세대를 무책임하게 비난하기 전에,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청년의 위기는 단지 개인의 위기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경제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문제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다.
왜 그런 선택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그 선택밖에 없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