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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가 작은 설이었던 이유와 팥죽의 의미

by 우니84v 2025. 4. 28.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겨울밤, 조용히 찾아오는 특별한 절기가 있다. 바로 동지다. "동지팥죽은 먹어야 겨울을 난다"는 속담처럼, 우리 민족에게 동지는 단순한 절기를 넘어 삶의 리듬과 세계관을 담아낸 소중한 시간이었다.

동지는 24절기 중 하나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하지만 단순히 계절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예로부터 동지는 작은 설이라고 불릴 만큼 중요하게 여겨졌고, 때로는 설날보다 더 신성하게 대접받기도 했다. 긴 어둠을 지나 다시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는, 죽음을 넘어 부활하는 생명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사람들은 집집마다 붉은 팥죽을 끓여 귀신을 쫓고, 건강과 복을 기원했다. 팥죽 한 그릇에는 단순한 음식 이상의, 조상의 지혜와 생존 본능, 공동체적 가치가 오롯이 녹아 있었다.

이 글에서는 동지가 왜 작은 설로 불렸는지, 팥죽의 문화적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동지를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는지를 깊이 있게 살펴보려 한다.

 

동지가 작은 설이었던 이유와 팥죽의 의미
동지가 작은 설이었던 이유와 팥죽의 의미

동지는 왜 '작은 설'로 불렸을까?

동지는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한 24절기 중 하나로, 양력 12월 21일~22일 무렵에 해당한다. 이 날은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이후부터는 해가 점차 길어지기 시작하며, 새로운 순환이 시작된다.

고대 중국과 한국에서는 이 천문학적 현상을 단순한 자연 변화로만 보지 않았다. 동지는 어둠이 극에 달하고, 다시 빛이 살아나는 전환점으로 여겨졌다. 죽음과 부활, 끝과 시작이 맞물리는 신성한 시기로 인식된 것이다.

특히 음양오행 사상에서는 동지를 음의 끝, 양의 시작으로 보았다. 밤(음)이 극에 달한 뒤 다시 낮(양)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는, 음이 소멸하고 양이 태동하는 순간이었다. 이는 곧 생명의 부활, 새해의 시작과 같은 상징성을 가졌다.

이러한 철학적 인식 때문에 동지는 자연스럽게 "작은 설"로 불리게 되었다. 본격적인 설날(음력 1월 1일) 이전에, 자연의 순환 주기에 맞춘 '첫 번째 새해맞이'를 했던 것이다.

한국 역사 속에서도 동지는 매우 중시되었다. 삼국시대, 특히 고구려에서는 동지를 국가적 제사의 날로 삼았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는 동지에 맞춰 제천행사, 즉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백성들이 모여 잔치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도 동지는 중요한 절기였다. 고려 왕실에서는 동지를 맞아 관료들에게 관복을 하사하고, 궁중에서는 팥죽을 나누며 새해를 기원하는 의례를 진행했다. 또한 동지에는 새해 달력을 만들어 하사하기도 했는데, 이는 동지가 새해의 시작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동지는 계속해서 중요한 절기로 여겨졌다. 조선 초기에는 동지를 아세, 즉 설날에 버금가는 날로 부르며, 왕이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친히 팥죽을 나누어주었다. 또 이날은 새로 관복을 받고 직책을 새롭게 다지는 중요한 의례가 있었다.

이처럼 동지는 단순히 농경적 절기나 계절 변화의 기념이 아니라, 국가적, 사회적, 심리적 새출발을 의미하는 중요한 시점이었다.

민간에서도 동지는 중요한 명절로 지켜졌다. 이날은 집안 대청소를 하고, 조상에게 팥죽을 올리며 한 해의 무사함과 새해의 평안을 기원했다. 각 가정에서는 아이들의 얼굴에 팥죽을 발라 액운을 막고, 문설주나 대문에 팥죽을 바르는 풍습도 있었다.

또한 이날에는 점을 치는 풍습도 있었다. 동지날의 날씨나 동짓날 팥죽의 끓는 모양을 보고 다음 해 농사의 풍흉이나 가족의 건강을 점치는 일이 흔했다. 이는 농경 사회에서 새해 계획을 세우는 데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었다.

결국 동지는 왕실에서나 민간에서나, 모두에게 새해를 준비하는 신성한 문턱이었던 것이다.

동지 팥죽의 문화적·민속적 의미

동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바로 팥죽이다. 동짓날 아침, 붉은 팥죽을 쑤어 집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냄새는 겨울밤의 깊은 정취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왜 하필 팥죽이었을까?

고대부터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붉은 색이 악귀를 쫓는 힘을 가진다고 믿었다. 붉은 색은 양의 기운을 상징하고, 음과 악령, 질병을 물리치는 신성한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 중국 고대 문헌  산해경에도 붉은 색으로 악귀를 제압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팥은 대표적인 붉은 곡식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동지처럼 음의 기운이 극에 달하는 시기에, 팥을 사용하여 양의 기운을 불러오고, 악귀를 쫓으려는 풍습이 생겨났다. 즉, 동지 팥죽은 단순한 영양식이 아니라 악귀를 물리치는 일종의 주술적 음식이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런 팥의 신성성을 강하게 인식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동지날에 팥죽을 끓여 집안 구석구석에 뿌리고, 대문이나 벽에도 발랐다고 한다. 심지어 마을 어귀나 헛간, 외양간에도 팥죽을 뿌려 액운과 병마를 막으려 했다.

 

동지 팥죽은 단순히 악귀를 쫓는 행위를 넘어서, 가족과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상징적 음식이기도 했다.

집안에서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팥죽을 나눠 먹었다. 특히 동지팥죽은 나이 수를 세는 행사와 연결되기도 했다. 동짓날을 지나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여겼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팥죽을 먹이면서 "한 살 더 먹었구나" 하며 성장과 장수를 축하했다.

또한 이웃 간에도 팥죽을 나누는 풍습이 있었다. 특히 고령자나 몸이 아픈 이웃에게는 직접 팥죽을 가져다주어 건강과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이처럼 팥죽은 단순한 개인적 행위가 아니라, 가족과 이웃, 마을 전체가 함께 복을 기원하는 공동체적 실천이었다.

심지어 농촌에서는 마을 주민 전체가 모여 커다란 가마솥에 팥죽을 끓이고 함께 나누어 먹는 대규모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이는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팥죽에는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새알심이다. 새알처럼 동글동글하게 빚은 찹쌀떡을 팥죽에 띄우는 풍습은 매우 오랜 전통을 가진다.

새알심은 단순히 식감을 위한 장식이 아니었다. 각 가족 구성원의 수만큼 새알심을 넣는 풍습은 가족의 무병장수와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아이가 다섯이라면 다섯 개의 새알심을, 부모를 포함해 일곱이라면 일곱 개를 세어 넣었다.

또한 새알심은 원형을 상징하는데, 이는 하늘, 우주, 인생의 완성을 의미했다. 즉, 팥죽에 새알심을 띄우는 행위는 가족과 공동체의 완성과 조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의례적 행위였던 것이다.

 

한국 각 지역에서는 조금씩 다른 팥죽 풍습이 전해졌다.

경상도에서는 동짓날 팥죽을 끓여 농기구에 바르기도 했다. 이는 농사를 돕는 농기구를 악귀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전라도에서는 팥죽에 떡국처럼 가래떡을 넣기도 했다. 겨울철 에너지를 보충하고, 새해를 대비하는 의미였다.

강원도에서는 동짓날 팥죽을 쑨 뒤 들판에 조금씩 뿌리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농경신에게 감사를 표하고 다음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의적 행위였다.

이처럼 동지팥죽은 단순한 '겨울 음식'이 아니라,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로 이어진 민속 신앙과 공동체적 의례의 중심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동지와 팥죽 문화는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동지는 점점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절기의 변화가 생존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동지 같은 중요한 시기를 절대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하지만 산업화, 도시화, 그리고 글로벌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계절의 흐름보다 학교, 회사, 경제활동의 일정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특히 양력 위주의 생활 방식이 자리 잡으면서, 음력 11~12월에 위치한 동지는 주목받지 못하고 '그냥 겨울 한가운데 오는 날' 정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동지는 단순히 "밤이 가장 긴 날"로만 남아 있을 뿐, '작은 설'이라는 깊은 의미는 거의 기억되지 않고 있다.

또한 가족 구조의 변화도 동지 문화를 약화시켰다. 핵가족화와 1인 가구 증가로 인해, 가족이 모두 모여 팥죽을 쑤고 나누어 먹는 공동체적 풍경은 보기 드물어졌다. 과거처럼 동지에 맞춰 대문에 팥죽을 뿌리거나, 아이들 이마에 팥죽을 찍어주는 풍습도 거의 사라진 상태다.

이처럼 절기의 변화와 함께 문화 자체도 빠르게 희미해져가고 있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동지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이어가려는 시도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동지를 단순히 전통 명절로 복원하는 것보다는, 자연과 인간의 리듬을 회복하는 시간으로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동지는 음의 기운이 극에 달하고, 양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다. 이는 우리 삶에서도 어둠을 지나 다시 희망을 꿈꾸는 전환점으로 볼 수 있다. 한 해 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를 내려놓고, 새로운 계획과 다짐을 세우는 '작은 새해맞이'로 삼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짓날을 기점으로 가족이나 개인이 작은 목표를 세워보는 것도 의미 있다. "내년에는 더 건강하게 살아야지", "내년에는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야지" 같은 다짐을 새해 결심보다 먼저 해보는 것이다.
또한, 동지 무렵에 맞춰 '나를 위한 정리'를 실천하는 것도 좋다.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며, 새로운 빛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다.

이처럼 현대적 감각으로 동지를 해석하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절기의 깊은 의미를 이어갈 수 있다.


팥죽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겨울철 별미로 사랑받는다. 최근에는 전통 팥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하고 있다.

  • 프리미엄 팥죽 카페 : 전통 팥죽에 견과류, 찹쌀떡, 크림 등을 얹어 디저트로 즐기는 새로운 팥죽 메뉴가 인기를 끌고 있다.
  • 간편식 팥죽 : 1인 가구를 위한 즉석 팥죽 제품도 다양하게 출시되어, 바쁜 현대인도 손쉽게 동지의 맛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 팥 디저트 : 팥빙수, 팥양갱, 팥라떼 등 다양한 형태로 팥이 현대인의 식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특히 몇몇 전통 음식 전문점이나 지역 축제에서는 동지를 맞아 팥죽 무료 나눔 행사를 열어, 전통 팥죽의 의미를 대중에게 다시 알리고 있다. 이런 행사는 팥죽이라는 음식을 통해 공동체적 정서와 전통의 따뜻함을 다시 느끼게 하는 소중한 계기가 된다.

또한 어린이집, 초등학교 등에서는 동지를 맞아 '팥죽 만들기 체험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은 팥을 삶고 새알심을 빚으며, 자연스럽게 동지의 전통과 의미를 체험한다.

이처럼 팥죽은 단순히 과거의 음식이 아니라, 현대인의 삶에 새로운 의미로 녹아들 수 있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동지는 단순히 계절적 이벤트가 아니다. 동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 : 해가 길어지는 자연의 흐름을 느끼며,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다시 깨닫는다.
  • 공동체의 소중함 : 가족과 이웃이 함께 팥죽을 나누던 전통을 기억하며, 현대 사회의 단절을 넘어서는 연대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 : 어둠을 지나 다시 빛을 향해 나아가는 자연의 순환처럼, 우리 삶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이러한 정신을 현대적으로 살려나간다면, 동지는 사라지는 명절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으로 되살아나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