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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전통 명절은 어떻게 남아있을까?

by 우니84v 2025. 5. 18.

남북한은 하나의 뿌리를 가진 민족이지만,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 속에서 살아오며 문화적 경로 또한 크게 달라졌다. 특히 명절을 대하는 태도나 기념 방식은 남북한 사회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인 문화 영역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설날, 추석, 단오 같은 전통 명절이 민간 중심의 가족 행사로 남아있고, 명절에 따른 대규모 귀성과 선물 문화가 중요한 사회적 풍경을 이루고 있다. 반면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한 국가 주도의 문화 통제가 강하게 작용해왔다. 이 글에서는 북한에서 전통 명절이 어떻게 계승되고, 어떤 변화 과정을 겪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전통의 계승 여부,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의 재해석, 그리고 명절 속에 담긴 민심과 국가의 상호작용을 통해 북한의 명절 문화가 남북한의 분단 현실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는지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북한에서 전통 명절은 어떻게 남아있을까?
북한에서 전통 명절은 어떻게 남아있을까?

사회주의 체제 속 전통 명절의 ‘공식화’ – 민속에서 정치로

북한은 건국 초기부터 전통 명절에 대해 이념적 재해석을 시도했다. 고전적인 민속 명절은 "봉건 잔재"로 규정되며 한때는 축소되거나 금기시되었지만, 이후 민족 정체성 강화를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일부 명절은 국가 공식 일정으로 흡수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문화 계승이 아닌, 사회주의 체제에 부합하도록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설날이다. 1967년까지 북한은 음력 설을 폐지하고 양력 1월 1일을 신년으로만 기념했다. 이는 과거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건설한다는 사회주의 혁명 정신의 일환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1989년부터 음력 설을 다시 공휴일로 인정하면서 전통적 요소를 공식 일정에 복귀시키기 시작했다. 이는 체제의 안정 이후 민족 문화의 복원 필요성을 느낀 결과이며, 주민들의 민속적 정서를 일정 부분 수용하려는 시도로도 해석된다.

추석 역시 1980년대까지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명절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명절 관련 프로그램이나 가족 단위 제례 허용 등, 점진적인 공식화를 거쳤다. 다만 이는 단순한 복원이 아닌 ‘가족 단위의 혁명 동지회’라는 식의 정치적 언어가 덧붙은 새로운 의미로 재편되었다. 이처럼 북한의 전통 명절은 원형을 그대로 계승하기보다는, 사회주의 이념에 적합하도록 구조를 바꾸고 해석을 달리한 형태로 존재한다.

한편, 단오나 한식, 삼짇날 같은 다른 절기형 명절들은 대부분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거나 민간에서도 축소된 상태이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 농업 관련 행사나 전통놀이, 요리 재현 등을 통해 소규모로 전승되는 예가 존재하며, 이는 관광 자원 개발이나 민족 문화 복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한적으로 활용되곤 한다.

결과적으로 북한에서의 전통 명절은 ‘계승’이 아니라 ‘공식화’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는 체제의 요구에 따라 의미를 재구성하고, 문화적 기억마저 정치의 도구로 삼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명절 음식과 의례의 변화 – 사라진 풍습, 살아남은 상징

북한의 전통 명절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는 바로 명절 음식이다. 음식을 둘러싼 문화는 공동체 정체성과 계급적 평등의 이상이 겹쳐지는 지점으로, 남한과 달리 매우 다른 경로로 발전해왔다.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는 계층 간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는 ‘사치성 음식’을 경계하며 전통적 잔칫상을 단순화하고 표준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대표적인 예는 떡국과 송편이다. 설날 아침 떡국을 먹는 풍습은 북한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사적 풍습보다는 국가에서 보급하는 식량 배급의 일환으로 떡국 재료가 제공되고, 국가기관 주도의 집단 명절 행사에서 대형 솥에 끓여 나눠먹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는 ‘모두가 하나된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강화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추석 역시 송편을 먹는 풍습이 있지만, 이는 민간 가정에서 자율적으로 준비하기보다는 직장 단위나 학교 단위로 배급을 통해 재현된다.

제례 문화 역시 크게 약화되었다. 사회주의 체제는 조상숭배를 ‘봉건적 유습’으로 간주해 이를 적극적으로 제거했다. 이에 따라 북한에서는 명절마다 조상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사라지고, 대신 ‘혁명열사릉’ 참배나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공간에서의 헌화로 대체되었다. 가족 제사는 허용되더라도 국가 차원의 통제 하에서만 가능하며, 공식 언어로는 ‘가정적 결속’을 위한 문화행사로 명명된다.

다만 최근 몇 년간 시장경제 요소가 일부 도입되며, 개인 간 선물 교환이나 비공식적인 음식 준비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평양과 대도시에서는 중산층 이상의 계층을 중심으로 고기류, 과일, 가공식품 등 명절용 특수 식재료에 대한 수요가 다시 커지고 있으며, 이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남한의 명절 음식 풍경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이처럼 북한에서의 명절 음식과 의례는 기존 전통을 이어가는 ‘연속성’보다는 체제에 맞게 편집된 ‘잔재 활용’에 가까우며,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문화적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명절의 정서와 기능 – 가족, 공동체, 그리고 국가

명절은 단지 날짜에 불과하지 않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회복과 소속감 강화, 그리고 민족적 정체성 재확인의 시간이다. 북한에서 명절은 이러한 정서적 기능을 여전히 지니고 있지만,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은 남한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국가가 정서의 주체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명절은 가족 중심보다는 공동체 중심, 더 나아가 국가 중심의 행사로 전환되었다. 예를 들어 설날과 추석에는 각 단위조직에서 ‘명절 모임’을 갖고, 간부나 지도원이 주민들에게 설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 등장한다. 또한, 김일성·김정일 주석의 생일은 사실상 북한 최대의 명절로 기능하면서 모든 명절이 그들의 ‘업적’에 종속되는 구조가 된다. 이는 자연스러운 민속의 흐름이 아니라, 체제가 정한 중심을 따라 감정과 행동이 유도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가족과의 시간, 명절 음식, 작은 선물과 같은 ‘사적인 감정’의 기억이 존재한다. 특히 남북 이산가족 출신이나 탈북민들의 증언을 보면, 명절은 그들에게 ‘잊지 못할 날’로 회상되곤 한다.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든 떡, 아버지가 차려준 술상, 추석 아침 산소를 찾아갔던 기억은 북한 사회의 통제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민속 감정의 흔적이다.

최근에는 민간 시장의 확장과 스마트폰 보급, 미디어 정보 확산 등으로 인해 남한의 명절 풍경에 대한 간접 정보도 유입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내부적 갈망과 문화적 충돌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는 향후 통일 논의나 문화 교류에서 중요한 함의로 작용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의 전통 명절은 분명 변화해왔다. 때로는 억압되고, 때로는 변형되어 체제에 맞게 편입되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사람의 기억’이 살아 있다. 국가는 명절을 체제 선전의 수단으로 삼고자 했고, 전통을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민중은 그 속에서도 가족과 공동체, 음식과 의례를 통해 조용히 전통을 이어왔다.

이러한 이중성은 북한 명절 문화의 본질이자 한계이며, 동시에 통일 이후 문화적 융합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체제가 부여한 명절의 형식 이면에 존재하는 인간적인 정서와 기억의 연속성, 그것이야말로 진짜 전통이다. 남북이 다시 마주할 날이 온다면, 우리는 이 공통의 기억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